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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3.1운동의 도화선 2.8독립선언 터 확인 운영자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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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mca.onmam.com/bbs/bbsView/58/552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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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도화선’ 도쿄YMCA 거사관동대지진에 회관 불에 타고
도시정비 겹쳐 그동안 위치 몰라

항일운동 성지 어떤 표식도 없어
정부 “건물주 설득해 기념관 추진”
100년 전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2·8독립선언의 정확한 장소가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2·8독립선언은 도쿄 유학생 11명이 주축이 돼 ‘재일본도쿄조선YMCA 회관’에서 일본의 불법 점령을 거부하고 조선의 독립을 외친 선언이다. 

1923년 간토(関東)대지진으로 YMCA회관이 불타 없어지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도쿄의 도시정비 사업으로 인해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으나, 최근 독립기념관이 일본지역 독립운동 사적지를 현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YMCA 회관의 위치를 밝혀냈다. 
2·8 독립선언 당시의 YMCA 회관. [사진 재일본한국YMCA]
독립기념관은 2·8독립선언에 참여했던 최승만이 남긴 신문 기사와 1921년 제작된 도쿄 지도, 지적도 등을 비교한 뒤 현재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니시간다(西神田) 3-3-12가 100년 전 YMCA의 위치임을 확인했다. 

독립기념관은 이에 따라 정부가 관리하는 국외사적지 목록에서도 2·8독립선언지의 정확한 위치를 정정할 계획이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윤소영 학술연구팀장은 “그동안 정부가 위치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항일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2·8독립선언의 터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당시 개천 위로 고속도로...독립운동 표지 하나 없어

1919년 2·8독립선언이 일어났던 '재일본도쿄조선YMCA'의 자리로 확인된 니시간다(西神田)3-3-12. 현재는 세탁소가 들어서 있다. 건물 뒷편으로 1964년 개통된 수도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해 12월 28일 주소를 들고 현장을 찾았다. 건물 오른쪽으로는 니혼바시(日本橋)강이 흐르고 그 위로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개통된 수도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었다. 

YMCA 총무를 지낸 최승만은 1926년 동아일보 기사에 “옆으로는 구단시타(九段下) 큰 개천을 끼고 있고, 앞으로는 센슈(專修)대학 정문이 좁지 않은 길로 통한다”고 당시 YMCA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함께 현장을 찾은 YMCA 도쿄일본어학교의 다즈케 가즈히사(田附和久) 교장은 “강이 자주 범람해 지리적으로 좋은 지역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엔 일본YMCA의 방 하나를 빌려 쓰다 1914년 이 위치에 단독으로 회관을 짓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YMCA회관은 130평(430㎡) 대지에 74평(244.6㎡) 규모의 건물로 목조에 흙을 친 듯 작은 2층집이었다. 

왼편엔 당시 없었던 큰 길이 나 있고, 정면으로 센슈대학이 보였다. 하지만 센슈대학도 정문의 위치가 바뀌었고, 당시 YMCA 자리엔 세탁소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주변은 고층 빌딩가로 변해 100년 전 조선 청년들이 독립을 외쳤던 장소였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도쿄 유학생 600명 결집해 '독립선언서' 낭독

1919년 2월 8일. 도쿄 하늘엔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도쿄에서는 보기 드문 큰 눈이었다. 이 곳에 있던 ‘재일본도쿄조선YMCA’ 2층 강당으로 조국을 잃은 젊은 유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들의 표정은 결의와 긴장으로 상기돼 있었다. 

오후 2시 ‘조선유학생 학우회’ 정기총회가 열렸다.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총회가 열리는 날을 결전의 날로 잡았다. 강당은 유학생 600명의 열기로 가득 찼다. 

총회는 곧바로 ‘조선청년 독립단’의 ‘독립선언식’으로 바뀌었다. 유학생 대표 백관수가 ‘조선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김도연이 결의문을 주창했다. 장내는 독립만세 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2·8독립선언의 주역들. [사진 재일본한국YMCA]
“조선청년독립단은 2천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得)한 세계 만국의 전(前)에 독립을 기성(期成·꼭 이루기를 기약)하기를 선언하노라.” 

최팔용 , 이종근 , 김도연 , 송계백 , 이광수 , 최근우 , 김철수 , 김상덕 , 백관수 , 서춘 , 윤창석 등 독립단 대표 11명의 서명이 들어간 선언문은 만장 일치로 채택됐다. 

독립선언식이 끝날 무렵 일본 경찰이 대회장으로 난입했다. 당시 외무성이 발간한 ‘재경조선인 최근 상황’에 따르면 현장에서 유학생 27명이 체포됐다. 

적국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2·8독립선언은 약 한 달 뒤 국내에서 일어난 3·1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됐으며,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8독립선언서는 3·1선언서의 기본이 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国士舘)대학 교수는 “2·8독립선언은 당시 재일 조선유학생과 조선민중 간에 널리 퍼진 반일 민족감정을 집약해 폭발시킨 사건이었다”면서 “2·8독립선언의 역사는 재일교포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식민지 종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민족운동은 당시 아시아 약소민족의 독립투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2·8독립선언문은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돼 각국의 주일대사관과 일본 귀족원, 중의원과 정부요인, 국내외 언론기관으로 보내졌다. 

'2·8독립선언 기념관'...복사 자료들만 전시

재일본도쿄조선기독교청년회(YMCA)는 1906년 설립됐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뒤 도쿄에 대사관, 공사관 조차 둘 수 없던 시절, YMCA는 일종의 주일 대표부 역할도 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 이후 학생들이 마음 놓고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던 YMCA회관를 거사의 장소로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재일본한국YMCA의 정문 현관 앞에 세워져있는 '2.8독립선언기념비' 1982년 '2.8 독립선언 63주년'에 맞줘 제막됐다. 윤설영 특파원.
재일본한국YMCA는 1929년, 원래 있던 건물에서 약 600m 떨어진 현재 위치(지요다구 사루가쿠초(猿楽町) 2-5-5)로 이사했다. 현관 앞에는 1982년 ‘2·8독립선언 63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기념비’가 있다. 건물 10층엔 2008년 개설된 단출한 자료실이 있지만 기념사업을 늦게 시작한 탓에 관련 자료들은 모두 복사본 뿐이다. 

‘2·8 독립선언기념자료실’ 실장을 겸하고 있는 다즈케 교장은 “명색이 자료실인데 원본 자료가 하나도 없다는 건 매우 애석한 일”이라면서 “천안 독립기념관 수장고에 여러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데, 활용 방안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 윤설영 특파원.

독립기념관은 2·8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이번에 공식 확인된 장소에 표식을 설치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관할인 치요다 구청 측은 “공공토지에 기념비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건물주를 설득해 ‘2·8 독립선언터’라는 동판을 설치하거나, 건물 일부를 기념관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이광수가 '2.8독립선언문'을 쓴 식당은 지난해 폐업

와세대 대학 학생이었던 이광수가 2.8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곳으로 알려진 산쵸안(三朝庵) 식당. 100년 넘게 영업해온 이 식당은 지난해 7월 직원들의 고령화와 일손부족으로 폐업했다. 윤설영 특파원.

3.1 독립선언문의 모체가 된 2.8 독립선언문은 이광수가 작성했다. 와세다(早稲田)대학 학생이었던 이광수는 학교 앞 산쵸안(三朝庵)이라는 식당에서 독립선언문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100년 넘게 영업을 해오던 이 식당은 지난해 7월 폐업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지난 2일 식당을 찾았더니 서둘러 문을 닫은 듯 폐업 후 반년이 지났는데도 식당 안은 정리되지 않은 채 영업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졸업생들의 싸인과 오래된 흑백사진 등이 책장에 놓여있었다. 

와세대 대학 학생이었던 이광수가 2.8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곳으로 알려진 산쵸안(三朝庵) 식당. 100년 넘게 영업해온 이 식당은 지난해 7월 직원들의 고령화와 일손부족으로 폐업했다. 윤설영 특파원.
와세대 대학 학생이었던 이광수가 2.8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곳으로 알려진 산쵸안(三朝庵) 식당. 100년 넘게 영업해온 이 식당은 지난해 7월 직원들의 고령화와 일손부족으로 폐업했다. 윤설영 특파원.

식당의 5대째 주인은 ‘폐업 안내문’을 통해 “100년 이상 긴 세월에 걸쳐 영업을 해왔으나, 직원들의 고령화와 일손부족으로 폐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광수는 2.8 독립선언 준비과정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임시정부 준비작업을 위해 미리 상하이로 건너가 당일엔 현장에 없었다. 

이후 이광수는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태평양전쟁에 학도병으로 나갈 것을 독려하는 등 친일로 변절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5&aid=0002876380&sid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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